2010년03월30일 교포신문
독일 현악기 마이스터 시험에 합격한 황인규씨
베를린) 독일의 유일한 현악기제작학교Musikinstrumentenbau in Mittenwald에서 실시한 2010년 마이스터 시험에서 황인규씨가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2001년 현악기 마이스터가 되고자 하는 꿈을 안고 독일에 온지 9년 만에 이룩한 쾌거였다.
'어릴 때부터 만드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1-2백원 정도의 용돈이 생기면 문방구로 가서 재료를 사다가 무언가를 만들곤 했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할머니가 기술자가 되라고 하시곤 하셨지요'
중학교 때 TV를 통해서 프랑스 악기 제작학교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것이 계기가 되어 현악기 제작자에 대해 알게 되었고 고등학교 때 진로를 고민하다가 결심을 굳혔다. 생각만 많고 정보가 없던 그에게, 그때는 고등학교 동창이었고 지금은 아내가 된 공은형(바이올리니스트)씨가 현악기 제작을 하는 김희중씨를 소개시켜 주었다.
김희중씨는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입학 연령제한(23세)에 걸려 일본에서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다며 현악기 제작을 제대로 배우려면 독일로 가라는 충고를 해 주어서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군대에 갔다가 독일로 나왔다. 나와 보니 연령제한은 이미 10년 전에 없어졌다고 해서 웃었다고 한다.
황인규씨는 작은 도시 레데(Rhede)의 기숙어학원에서 독일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동네에 고등학교 역사교사로 정년 퇴직을 한 후에 취미로 현악기를 제작하시는 Walrad라는 분이 있었어요. 어느 날 그의 공방에서 이벤트를 한다고 어학원생들을 초대했어요. 학원생 10 여명이 모여서 놀러 간 것이 인연이 되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멀리 한국에서 현악기 마이스터가 되겠다고 온 황인규씨에게 아버지처럼 자상하게 독일어도 가르쳐 주고 바이올린 제작에 관한 것도 가르쳐 주고, 바이올린 연주도 지도해 주었다.
미텐발트 현악기 제작학교 입학시험은 현악기 연주, 악기제작, 기본 소양, 제도, 독일어 시험을 치는데 그 모든 과정을 발라트씨의 도움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미텐발트학교는 1년에 12명을 미리 선발하여 상반기에 6명, 하반기에 6명이 입학을 한다.
첫 번째 도전에서 11등으로 입학허가를 받았지만 선배 3명이 유급을 하는 통에 그 해에는 9명만이 입학을 할 수 있어서 황인규씨에게는 입학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이듬해 다시 도전한 끝에 4등으로 합격을 했고, 곧바로 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아침 7시 30분부터 4시까지 이론과 실기를 병행하는 수업을 3년 반 동안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1주일에 한 번씩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였다고 한다.
'A4용지 한 장 정도를 매주 제출해야 했는데 그 주에 배운 것을 그림까지 그려서 제출해야 했습니다. 외국인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처음에는 한 장 작성하는데 6시간씩 걸렸어요.'
어렵게 작성하면서 고생은 했지만 1점의 성적으로 그나마 보상을 받았고, 지금은 그 동안 제출한 240장이 넘는 보고서들이 좋은 자료로 남아 있다.
3년 전 졸업과 함께 황인규씨는 베를린으로 왔다.
1909년에 문을 열어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베를린 <안톤 필라 현악기 제작 공방>에서 일을 시작한 황인규씨는 일을 시작한 지 6개월 후부터 마이스터 공부를 시작했다. 주중에는 공방에서 일을 하고 주말에는 마이스터 과정을 위한 수업을 들으면서 차근차근 준비를 해 나왔다.
마지막 시험은 미텐발트 학교로 가서 이론과 실기, 구두시험을 쳤는데 이론 시험은 책이나 학교에서 배운 것 뿐 만 아니라 현악기 제작자라면 알아야 할 상식적인 문제도 많이 나왔다. 이 업계에서 일하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
실기 시험은 8시간 안에 6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나름 손이 빠르다고 자부한 그인데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같이 실기 시험을 친 9명의 마이스터 지망생들은 경력 5년에서 10년차로 오랫동안 준비를 해 온 사람들이었는데 황인규씨는 경력 3년의 최단기 도전자였다. 이번 마이스터 시험에서 5명만이 합격했다. 미텐발트에서 같이 공부한 6명의 입학 동기생들 중에서 첫 번째로 마이스터가 되었다.
1858년에 설립된 독일에서는 유일한 현악기 제작학교인 Musikinstrumentenbau in Mittenwald를 졸업한 한국인은 황인규씨를 포함해서 6명이고 이 가운데 4번째 한국인 마이스터가 되었다.
마이스터가 되면 달라지는 건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자신의 공방을 마이스터만 차릴 수 있었는데 유럽 연합이 되면서 법이 바뀌어 2004년 이후에는 마이스터가 아니라도 공방을 열 수 있다.
'독일로 와서 우연찮게 좋은 분들을 만나서 원하던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짧은 시간 내에 마이스터가 되었습니다. 발라트씨나 지금 공방 쉐프, 실기를 지도해준 마이스터 등 고마우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분들의 도움으로 공부를 마칠 수 있었으니 저도 앞으로 이 길로 가고 싶은 학생들이 있다면 가르쳐 주고, 도움도 주고 싶습니다.'
독일에 와서 놀랍기도 하고 부러운 것 가운데 하나가 몇 백년 전에 만들었던 현악기 제작기술에 대한 기록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황인규씨도 현악기 제작과 수리에 관련된 책을 번역하거나 집필을 하여 필요한 사람들이 쉽게 정보를 얻게 하고 싶고, 그 동안 배우고 익힌 노하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가르치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한국 출신의 유명 연주자들은 많은데 아직 현악기 제작이나 수리 분야는 열악해 수리를 위해 악기를 외국으로 들고 나오는 일이 많다며 앞으로 한국이 제작과 수리 분야도 세계적인 수준이 되는데 일조를 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올 여름, 최고급 수준의 테크닉을 더 많이 익히기 위해 제작과 수리에 관한 특별한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으로도 유명한 미국의 세계적인 현악기 제작 공방 Hans Weisshaar로 직장을 옮길 예정이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게 될 그의 앞날에 큰 발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684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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